아마도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와인을 꼽으라면 보졸레 누보가 빠질 수 없을 겁니다. 한때는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 되면 여기저기서 파티와 이벤트가 넘쳐날 정도로 열풍을 몰고 왔지만 이제는 거품 마케팅의 대표 사례로 낙인 찍히면서 그야말로 허영이 넘치는 잘못된 와인 문화의 대표격으로 '찍혀 버린' 와인으로 전락하면서 열풍도 많이 식어버렸죠.
사실 보졸레 누보 와인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8-9월에 수확한 포도를 길어야 두 달 안에 발효와 숙성 과정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성들여 발효와 숙성 과정을 충분히 거친 와인과 비교한다면 맛이나 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2만 원 대에서 형성되는 가격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그 돈 주고 마실 가치가 있는 와인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게 "보졸레 누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일 년에 한 병 쯤은 마셔 볼만한 와인'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맛과 향으로는 대단할 게 없는 와인이라고 해도,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면서, 올 한 해도 슬슬 저물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낭비하는 맛으로 즐길 여유조차도 버릴 필요는 없겠지요.
사실 작년에 이른바 '가짜 보졸레 누보' 파동 때문에 프랑스가 발칵 뒤집어지면서 보졸레 누보가 더 불신을 받게 된 것도 있고, 보졸레 누보 때문에 보졸레의 이미지까지 좀 싸구려로 찍힌 감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보졸레의 가메 품종 와인이 그렇게 쉽게 무시할 만한 와인은 아닙니다. 처음 느낌은 확실히 영 아니다 싶습니다. 처음에는 알콜향이 확 풍기고 캔디 같은 달달한 향만 잔뜩 뻗칩니다. 맛 역시도 쓰고 시기만 합니다. 첫 느낌은 '뭐 이런 게 다 있어?' 싶을 정도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시 이 놈도 보졸레라고, 기분 나쁜 맛과 향은 좀 누그러지고 가메 포도로 만든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딸기잼 향이 슬슬 힘을 얻습니다. 맛 역시도 좀 더 과일이 살아나면서 즐길 만한 정도로 자세를 잡아 줍니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느긋하게 즐기기에는 나쁠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와인 문화가 발전하면서 무척이나 학구적이고 진지한 쪽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까 술이란 녀석이 가진 본질인, 기분 좋게 취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낭비하는, 그야말로 이 카테고리의 제목인 '취생몽사'라는 여유로움에서는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요. 그리고 웬 와인 박사나 와인 선수들은 그리도 많으며 별 같지도 않은 편견과 무식함까지 뭔가 대단한 상식 파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는 판입니다. 오류투성이 와인 책을 내놓은 이원복 교수는 "와인이랑 치즈를 같이 먹는 서양 사람을 본 적 없다"는 황당한 소리까지도 하는 대단히 학구적인 한국의 와인 세계입니다. 얼치기 와인 전문가들한테 놀아나서 엉뚱한 땅이나 죽어라고 파고드느라 정력 낭비는 그만 하시고, 이맘때 쯤이면 비싼 돈 주고 럭셔리한 보졸레 누보 파티에 갈 필요는 없다고 해도 편의점에서 아무 보졸레 누보나 한 병 사서 맛이냐 향에 대한 학구적인 분석 같은 거 다 잊어버리고 2만 원짜리 사치스러운 느긋함을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세월은 흘러가고 우리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니까요...
- bottled by: Les Vins Georges Dubœuf
- grape variety: Gamay
- appellation: Beaujolais AOC
- alchol: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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