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전제조건을 하나 달겠습니다. 아직까지 체포된 '미네르바'가 진짜 미네르바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합니다. 이 글은 체포된 미네르바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가정하고 쓴 것입니다.
미네르바가 체포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던 것은 그가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백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바람에 뉴욕대 출신 강만수만 '만수 위에 백수'란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좀 조용하죠)은 "가짜한테 대한민국이 놀아났다"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자기들도 놀아나기는 매한가지였죠. 네티즌들은 백수만도 못한 만수를 조롱하고 있습니다만, 어째 좀 공허합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0.1%의 상류층, 미국에서 살다 온 50대 금융전문가, 이런 신화가 깨진 것에 실망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용감하게도 위기 상황을 제대로 예언하고, 많은 예언이 적중했다고 '경제 대통령'이라고 찬사를 보냈는데 이거 웬걸, 그게 아니라 그냥 우리랑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미네르바에 대한 신화가 깨지는 순간입니다. 물론 우리는 인정하기 싫습니다. 50대 금융전문가면 어떻고 30대 백수면 어떻느냐, 이렇게 위안을 합니다. 하지만 만약 미네르바가 자신이 50대 금융전문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그저 전문대를 나온 30대 백수라고 밝혔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고 찬사를 받았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깨어진 신화는 미네르바만은 아니었습니다. 과연 미네르바가 정말 엄청나게 똑똑해서 그런 예언을 했던 것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둔재도 아니었지만 천재도 아닙니다. 미네르바가 적중시킨 많은 부분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국내외에서 경고되어 왔던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미네르바 사건 속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골치아프게 얽혀서 금융 CEO들도 '도대체 자기 회사의 파생상품이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할 만큼 눈 돌아가는 이 금융자본주의가 알고 보면 전문대 출신 백수조차도 본질을 간파할 수 있는 허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린 그저 금융 자본주의의 신화 속에서 속아온 것 뿐입니다. 금융 자본주의를 만들고, 유지하고, 가장 잘 안다는 사람들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이 금융 자본주의의는 무궁히 번영할 것이고, 그러니 안심하고 당신의 재산을 던져 넣으라고 유혹하는 호객행위만 하면 됩니다. 언제나 경제 문제를 진단할 때 등장하는 재벌의 경제연구소, 금융회사의 전문가들은 그저 금융 자본주의의 '삐끼'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들은 이 체제를 '너희들 같은 서민들이 함부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닥치고 펀드나 들어'라고 범접하기 힘든 저 하늘 위 천공의 성처럼 둥둥 띄워놓고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해 왔습니다. 그 실체는 전문대 출신 30대 백수도 알 수 있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천공의 섬, 그 신화는 미네르바와 함께 박살이 난 셈입니다.
삐끼들도 모르진 않을 겁니다. 사실 간단합니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가는 것은 터져버릴 풍선에 계속 공기를 주입하는 짓일 뿐이다"라고 외치면서 탈출하면 됩니다. 하지만 어렵죠. <매트릭스>에서 조직을 배신하는 사이퍼가 스미스 요원과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먹는다고 느낀다면 나는 먹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진실을 알아도 기득권이 갖는 달콤함을 뿌리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금융 자본주의의 매트릭스 안에 있으면 많은 연봉과 높은 지위, 선망받는 신랑신부감, 화려한 사교파티... 그밖에 수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실은 이게 아니야!"라고 뛰쳐 나오는 순간 황량하고 굶주린 벌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진실 하나 찾자고 그 벌판으로 뛰어나갈 사람이 있을까요? 하다못해, 겨우 '정규직'이라는 기득권을 가지고도 '비정규직'을 업신여기면서 자신의 기득권에 취하는 게 사람입니다. 금융전문가라는 빛나는 타이틀이 주는 기득권을 어찌 쉽게 버리겠습니까?
미네르바는 매트릭스 밖으로 탈출했을 때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본질을 깨달았을 때 진실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삼성경제연구소와 미네르바의 진정한 차이입니다. 터져버릴 풍선이라고 해도 그 풍선이 터지기 전에 내가 연봉을 잔뜩 긁어서 부유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 풍선이 터지지 않을 것이니 계속 바람을 불어 넣으라고 독려합니다. 나 은퇴하기 전에 터지지 마라, 하고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기도를 하면서 겉으로는 시치미 뚝 떼고 위기는 없다고, 단기적으로는 가라앉을 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물론 길게 보면 상승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없는 사람들은 짧은 순간의 위기에서조차 삶을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상승곡선을 탈 때 잔치는 부유한 이들 차지이고, 추락할 때에는 서민들의 혈세를 빨아서 수혈을 받는 게 금융 자본주의의 본질이기 때문이지요.
미네르바가 잡히면서, 그리고 그가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백수임이 밝혀지면서 미네르바의 신화는 깨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이기를 바랐죠.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매트릭스를 과감하게 탈출해서 황량한 진실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를 바랐지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애초부터 그는 매트릭스 밖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신화를 깨야 합니다. 이 금융 자본주의의 실체는 미국의 MBA를 나오고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고매하신 금융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도 노력하고 공부하면 충분히 꿰뚫어볼 수 있는 텅 빈 실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진실을 알기 위해서 네오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황량한 현실이 힘들어서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서 기름진 스테이크를 음미하고픈 사이퍼 같은 마음을 품으면서 이제나 저제나 펀드 대박 나기를, 땅값 오르기를, 부동산 붐이 다시 불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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