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실종 사건이 결국 살해 사건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범인이 잡히고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CCTV가 한몫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길거리에 방범용 CCTV를 설치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생기는 듯합니다. 특히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CCTV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CCTV를 인권 침해와 연결짓는 주장에 대해서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반론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반론들이 있지만 대체로 골자는 '내가 떳떳하면 CCTV에 찍힌들 뭐가 문제인가?', 그리고 '피해자의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는 두 가지입니다. 그 두 가지 주장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떳떳하면 찍히는 게 뭐가 두려운가?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사생활이 있게 마련입니다. 별로 좋은 예는 아닙니다만, 애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요. 결혼한 사람이 다른 이성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요(성관계만 안 하면 범죄는 아니고 간통죄도 늘 위헌 시비에 걸려 있지요). 좋다고 말할 일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사생활이고 사생활은 그것이 도덕적으로는 좋은 소리를 듣느냐 마느냐에 관계 없이 보호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륜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 길을 가다가 한적한 곳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 하고 진하게 키스라도 할 수도 있겠죠. 아마 경찰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면서 "야, 그림 좋네..." 한다고 상상해 보시죠.
또한 틱 장애와 같이 독특한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얼굴에 흉터라든지 기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법적으로는 걸릴 이유가 없지만 남에게 알려지게 하고 싶지 않은, 더구나 그게 녹화가 되어서 두고두고 남는 상황은 더더욱 바라지 않는 사생활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 CCTV는 이런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찍고 기록하게 됩니다. "떳떳하면 찍히는 게 뭐가 두렵냐"는 말은 뒤집어서 "떳떳한데 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해야 하냐"는 말로도 받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떳떳하니 감시 당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는 독재국가의 사고방식입니다. 국가보안법이니 인권을 탄압하는 법안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늘 그런 식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법 있어도 인권을 억압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꼭 하지 말라는 짓 하는 반정부 세력들만 인권 타령을 한다"는 식의 논리는 독재국가가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에 반박하는 주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해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먼저 CCTV가 갖는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습니다. 보통 초기에는 범죄가 줄어드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결과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결국 범죄자들은 CCTV를 피해 나갈 방법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마스크나 모자로 눌러쓰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경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요. 그렇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마스크 시위 처벌법"에서 더 나아가서 "길거리에서 마스크 금지법"을 만들어야 할까요?
감시의 방법으로 범죄를 해결하는 것의 맹점은, 어떤 방법이 잠깐 효과가 있다가 그 효과가 줄어들고 맹점이 발견되면 그 맹점을 메우기 위해서 또 다른(보통은 더 강력한) 감시 방법을 들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더 많은 감시가 이루어지고 인권이 더 많이 침해당하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해듯이 CCTV의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조사 결과도 많습니다. CCTV가 약발이 떨어져서 또 끔찍한 사건이 생긴다면,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업고 한 단계 더 심한 감시방법이 필요하다고 나서게 됩니다. 별 고민 없이 '범죄 예방을 위해' 이를 허용하고, 또 그걸로도 안 되는 더 심한 것, 더 심한 것.... 이렇게 가게 되면 정말로 머지 않은 시대에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온 국민들이 전자칩을 심고 다니는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들리시겠죠?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대로 감시 체제가 하나하나 쌓여 가고 이렇게 해도 맹점이 있고 저렇게 해도 맹점이 있어서 계속 감시 방법이 늘어나고 고도화하다 보면 결국은 전 국민 감시 체제로 가게 마련입니다. 그게 권력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CCTV를 가해자의 인권에다가 갖다 붙이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가해자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인권은 존재하고, 싫어도 그런 인권을 존중해야만 법질서도 권위가 서고 법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마련입니다. 수 틀리다고 맘대로 해도 좋다는 식은 조폭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아무튼 가해자의 인권은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면 아무 죄 없이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인권도 가해자의 인권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도 좋을까요?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에 대해서 슬슬 감정적인 반발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네가 피해자 입장이 되어 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 하지만 이 세상에 입장 생각해야 할 사람들은 많습니다. 가해자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입장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대중 정권 때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람들은 이사 갈 때마다 경찰이 찾아 와서 집주인에게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민주화 인사라고 치켜세워 주면서도 한쪽에서는 그런 짓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박정희 시대 긴급조치위반이나 5.18 관련자조차도 지금도 여권을 만들 때 '신원미회보'로 분류되어서 따로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권력에게 감시를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되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범죄자로 몰려서 온갖 고통을 다 겪은 다음에, 나중에 무죄 판결 받으면 뭐합니까? 이미 가정은 파탄 날 대로 다 나고, 사람들은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진짜 무죄 맞아?'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심정을 제가 다 헤아릴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차별 감시를 경찰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 주자는 논리는 '최진실법'이라는 너울을 쓰고 사이버 모욕죄를 정당화하려는 논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는 것과, 남용될 여지가 큰 감시 권한을 아무 생각없이 쥐어주자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CCTV가 그렇게 남용된 사례가 있었나?"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식의 남용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어떤 권력기관도 반정부인사 감시나 사적 목적으로 남용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국가의 감시체제는 늘 겉으로는 범죄예방이란 너울을 쓰고 은밀하게 남용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은밀한 사실을 우리들이 알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CCTV, 무조건 하지 말자는 얘긴가?
물론 현실은 현실입니다. 경찰력이 모든 국토에 다 미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적한 곳에 사건의 목격자가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가피한 경우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CCTV는 무차별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찍고 기록하는 인권침해라는 문제점이 있음을 생각하고, 목적하는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경찰력이 미치기 어렵고 인적이 드문 곳에 제한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로 밤 시간에 범죄가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해서 범죄의 패턴을 분석해서 범죄 우려가 큰 제한된 시간에만 가동하는 방법도 감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CCTV 촬영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는 반드시 이 사실을 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범인들이 CCTV가 없는 곳으로 가서 범행을 저지를 거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CCTV가 없다고 생각해서 안심하고 범행을 저지른 뒤에 잡는 것은 이미 늦은 겁니다. 오히려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줘서 그 곳에서 범행할 생각을 포기하게 하는 편이 예방 차원에서는 더 나은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인권침해에 관한 시비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 쪽을 다닐 때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해 주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CCTV를 통한 자료가 함부로 남용되지 않도록 CCTV 자료를 열람하는 데에 관련된 절차를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실시간 모니터링은 법원의 영장 없이는 금지해야 합니다. 어차피 그 많은 CCTV를 실시간 모니터링해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발견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실시간 모니터링은 그야말로 무차별 감시이기 때문에 범위와 기간을 명확하게 정한 법원의 영장 없이는 금지해야 합니다. 또한 자료 조사를 위해서 CCTV를 열람할 때에도 반드시 언제 어떤 기록을 누가 보았는지, 그리고 그 목적은 어떤 사건에 관련된 것인지를 모두 자세하게 기록하고 볼 수 있는 사람의 수도 극히 제한해야 합니다. 열람할 수 있는 장소도 제한하고 복사 역시도 법원 영장이 없이는 금지해야 합니다. 물론 기록을 일정 기간 보관한 다음에는 반드시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일부는 이미 시행하고 있겠지만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만큼 활용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더욱 엄격하게 제한해야 하고, 특히나 다른 방법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막는 장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국가 권력의 속성 : 하나를 주면 열로 이용해 먹는다
국가 권력의 속성이라는 게, 그들에게 어떤 권력을 쥐어주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범죄예방을 위해서 CCTV를 찬성하면, 권력은 그 CCTV를 다른 곳에도 이용해 먹고 싶은 유혹에 끌려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반정부 인사를 감시하거나, 나쁜 마음을 먹은 경찰이 남의 사생활을 캐기 위해서 이용하거나, 그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악용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며 이런 경우에 바깥으로 그 사실이 공개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순진하게, 그저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불가피하게 권력을 줄 때에는 엄격하게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꼼수로 그 최소한의 권한도 남용하는 게 권력의 속성인데, 그들이 하는 그럴 듯한 말만 믿고 막강한 권력을 퍼주다가는 정말 몸 속에 칩을 심고 다녀야 하는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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