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 그 중에서도 실업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합니다. 특히 노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래서 작년에는 근현대사 특강이랍시고 퇴물 우익 인사들을 긁어 모아서 중고등학생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해가면서까지 강사료를 챙겨 준 바 있고, 이번에는 아예 대통령 직속 '퇴물에게 세금 퍼주기' 기구도 만들 모양입니다.
이른바 '위대한 국민을 위한 원로회의'라는 건데 주요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범국가적 경축행사 개최 등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 주는 기구라고 합니다. 이 기구의 구성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함으로써 말썽 많았던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인사들이 주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건국 60주년 끝났으니까 이제 할 일 없어진 퇴물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차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원로회의 의장도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던 현승종 씨가 유력하다고 합니다.
더 웃기는 것은 이미 헌법에 규정된 '국가원로 자문회의'라는 기구가 있는데 원로회의를 또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국가원로 자문회의가 워낙에 바쁘셔서 주요 국가정책 수립이나 범국가적 경축행사 개최 따위의 시시껄렁한 일은 맡을 겨를이 없으셔서 원로회의를 하나 또 만드시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국회입법조사처에서조차도 새로운 원로회의가 국가원로 자문회의와 중복되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원로회의를 또 만들고 싶다면 새로운 법을 제정해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국회입법조사처의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원로 자문회의가 있는데 또 원로회의를 만들겠다는 속뜻이 뭐냐, 하면 헌법을 보면 국가원로 자문회의의 구성을 '직전 대통령'이 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정도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실 겁니다. 자기와 맞장구 잘 쳐주는 목소리만 듣고 싶어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들로 구성되는 국가원로 자문회의 얘기는 듣기가 싫은 겁니다. '위대한 국민을 위한 원로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지명권을 가지는 쪽으로 추진됩니다. 한 마디로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서 뽑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 시나리오는 뻔한 일입니다. 위대한 국민을 위한 원로회의 얘기만을 듣고, 국가원로 자문회의는 유명무실화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황당한 것은 예정대로 다음 달에 '위대한 국민을 위한 원로회의'가 구성되면 바로 예정되어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한 자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회의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회가 작년에 무슨 짓을 했는가 보자면,
문화부와 건국60주년기념사업회의 의뢰로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 소속 교수 등이 집필한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꿈'에는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었고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며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 기점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봐야 한다"고 서술돼 있다.
- 관련 기사 : 柳문화, '건국 논란' 홍보책자 유감 표명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광복회 회원들은 격분해서 훈장을 반납하기로 결의했고 유인촌 장관이 부랴부랴 광복회로 쫓아가서 유감표명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짓을 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될 원로회의가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행사를 자문한다고 합니다. 하긴 뭐, '통일은 없다'는 사람이 통일부 장관이 되고, 대운하를 찬성하는 사람이 환경부 장관이 되는가 하면 반노동자 사고를 가진 사람이 노동부 장관이 되는 게 이명박 정부이니 임시정부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광복회 분들에게 또 다시 비수를 꽂는 일입니다.
그밖에도 이 원로회의는 반 년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열어서 주요 국가정책에 대한 자문, 국민생활 관련 국가적 현안에 대한 여론 청취 및 전달과 같은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기득권 수호에 똘똘 뭉친 이런 분들이 뭔 여론을 제대로 청취하겠으며 제대로 전달을 하겠는가 싶습니다만, 멀쩡한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제껴 놓고 아까운 세금을 수구세력의 퇴물들에게 퍼 줄 게 뻔한 '위대한 국민을 위한 원로회의'는 자기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는 귀를 막고 내가 듣고 싶은 달콤한 소리만 듣겠다는, 16년 동안 소통만 해 오신 소통의 달인, 먹통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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