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블로그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게 언론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언론들, 특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보이는 행태들은 욕 먹어도 마땅합니다. 그래서 블로거들이 제기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들은 분명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많고, 언론들도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언론을 비난하는 블로거들이 오히려 그 언론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부정확한 근거, 또는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문제를 확대시키거나 언론에 대한 비난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물론 블로거들이 언론사 기자들처럼 자유롭게 취재를 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때로는 '오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때때로는 그럴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보임이 밝혀졌는데도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그냥 글만 지우면 그만, 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태도는 분명 그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언론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아니 구색으로라도 '정정보도'라도 내는 언론만도 못한 모습입니다.
4월 27일에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싸고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이 벌인 과격 시위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성화 봉송을 저지하려는 한국인 시위대에게 폭력을 휘두른 일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27일 밤에 한국인이 중국인 두 명한테 길거리에서 참혹하게 맞아서 죽었다는 포스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기사 : 한국인을 밟아 죽이는 중국인 2명(어제밤 4월 27일 실제사진)
'실제 사진'까지 링크하면서 일본 뉴스에서 서울의 한 지하철역 입구에서 한 남자가 남자 두명에게 심하게 폭행당해서 죽었다는 기사를 인용, 한국인이 중국인 두 명에게 맞아서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한국 사람들을 죽인 사건도 열 받지만 이에 대해서 침묵하는 언론들도 문제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그 일본 뉴스를 자세히 보면, 죽은 사람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죽인 사람 두 명은 중국인이라고 나와 있지만 죽은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말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럴 경우에는 추측으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이 뉴스에 대해서 한국 언론들도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좀 다릅니다.
참고 기사 : 반말했다며 중국동포 때려 숨지게 해
이 사건의 진상은 한마디로 중국동포끼리 벌어진 싸움이 살인 사건으로 발전한 겁니다. 때린 사람들도 중국동포고 맞아 죽은 사람도 중국동포입니다. 한국인-한국인으로도 볼 수 있고 중국인-중국인으로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 뉴스를 그렇게 크게 다루지는 않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일본 언론에서는 피살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보도했고, 이걸 본 블로거들은 마치 중국인이 한국인을 때려 죽인 것처럼 해석해서 '분노의 포스트'를 한 겁니다. 물론 이 포스트는 일파만파로 번져 나가서 이곳저곳에서 중국인들, 그리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을 비난하는 포스트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참고 기사 : 어제밤, 서울에서 중국인에게 한국인 살해당해...
참고 기사 : 중국인에게 '밟혀죽은 한국인' 우리 언론들 왜 침묵하나?
참고 기사 : 무서운 중국, 무능한 정부
잘 알려진 유명 블로거까지도 이 행렬에 동참해서 민족 감정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민족 감정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 문제로 전쟁이 나는 곳도 한두 곳이 아니고 이거 잘못 건드렸다가 폭동이나 증오 범죄가 일어나는 건 전세계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만약에 이 기사 보고 열 받아서 중국인들한테 주먹질이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과연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민족 감정이 갖는 파괴력을 생각해 본다면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요즘 들어서 한국에 있는 불법체류자나 외국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한국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범죄와 자기들끼리 저지르는 범죄는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저지르는 범죄, 특히 살인과 같은 중범죄는 아무래도 '민족 감정'이란 게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런 포스트 가운데서 오보라고 지적하는 댓글들이 이미 한참 전에 올라왔는데도 그냥 침묵하거나 글을 지워버리고 시치미 떼는 경우입니다. 이미 잘못된 글로 그렇게 민족 감정을 자극해 놓고서 글만 지우면 그만일까요?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글은 아니었지만 저도 전에 그런 실수를 저질러서 사과 댓글을 올린 바가 있습니다. 요즘은 다음 블로거뉴스를 비롯해서 메타블로그들 덕분에 블로그 포스팅이 상당한 반향과 영향력을 가집니다. 그런 힘을 가진 만큼, 그런 힘에 대한 책임의식도 가져야 하는 게 블로거들, 특히 블로고스피어에서 나름대로 스타로 통하는 인기 블로거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인기와 힘에 견줄 만한 책임의식을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이번 살인 사건이 아니라도 동북 공정이나 올림픽 성화봉송 시위 문제 때문에 중국을 보는 우리들의 감정이 안 좋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해서 감정을 자극하는 태도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경우에서 어떤 이들은 "어차피 그놈들은 나쁜 놈들인데 뭐 어떠냐"는 식으로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그들보다 한 차원 높은 모습을 보여야 그들을 마음 놓고 비판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우리의 비판은 '사돈 남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가 그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비판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몇몇 큼직한 이슈에 대해서 신중치 못한 일부 블로거들이 부정확한 사실이나 사실이 아닌 일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 포스팅이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 바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큰 이슈로 한참 시끄러울 때 일부러 사실도 아닌 것을 은근슬쩍 사실인 것처럼 흘려서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이 가짜 사실을 다른 블로거들이 사실로 믿고 계속 퍼나르고 관련 포스트를 쓰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오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이미 그 가짜 사실은 '신념'으로 굳어져 버려서 소용 없는 경우조차도 있습니다. 블로고스피어가 점점 성장하고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질 수록 더 많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특히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실수로 오보를 냈을 경우에는 침묵하거나 글만 지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여기에 대해서 책임지는 모습도 보여야 합니다. 힘에만 도취되어서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힘은 거꾸로 우리의 목을 조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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