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나갔습니다. 거의 20년 전에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 다 흘리던 추억을 요즈음 소화기 가스를 듬뿍 마시면서 되새기게 됩니다. 이명박은 국민들의 소리에 귀 막고 있다는 절망, 차벽으로 전경으로 꽉 틀어 막으면서 국민들을 틀어막는 데서 나오는 절망,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나오는 분노로 거리는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밧줄로 닭장차를 묶고 "으쌰으쌰" 하면서 차를 끌어내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사실 "으쌰으쌰"가 아니라 "제발제발"로 들렸습니다. 제발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해 달라고 말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보니,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촛불을 이어가고 싶으면 비폭력을 지켜야 한다"는 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리에서 느낀 현실과는 동떨어진 낭만으로 인터넷은 가득합니다. 거리에서 자신을 내던지면서 비폭력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키보드 앞에서 편안하게 비폭력을 떠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키보드 앞에서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분들께 묻습니다. 안중근 의사, 이봉창 열사, 윤봉길 열사, 5.18, 이한열... 이 수많은 이름들을 불러 보시고 나서, 이들에게도 역시 그렇게 말씀하실 것인지를 되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니, 이들도 역시 정당화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은 보통 폭력을 독점하고 자신들만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당화하는 권력자들의 단골 메뉴입니다. 사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말에는 단서 조항이 있습니다. "단, 우리는 예외다."

입만 열면 간디 타령하는 분들, 간디의 비폭력이 방패 몇 대 맞고 닭장투어 하는 로맨틱한 싸움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착각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수천 명이 영국군의 총탄에 쓰러지고, 수많은 이름없는 백성들이 희생당한 피 위에서 인도의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간디의 비폭력은 낭만이 아니라, 살벌하고 처참한 피로 이루어진 투쟁입니다. 마틴 루터 킹도 머리에 벽돌 맞고 생명의 위협을 수도 없이 받아 가면서 목숨 걸고 버틴 비폭력입니다. 비폭력은 그렇게 로맨틱하게 입에 올릴 개념이 아닙니다.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원칙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비폭력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겁니다. 간디의 이름을 입에 올리려거든 먼저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머리를 방패로 찍히고, 물려서 손가락이 끊어져도 비폭력을 사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남들에게 비폭력을 강요하기 전에 자신에게 진지하게 되물어 보십시오. 당신 자신은 그럴 자신이 있는지.

그럴 자신이 있습니까? 그럼 당장 일어서서 거리로 나서십시오. 비폭력은 키보드 앞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싸움의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비폭력은 남에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겁니다. 가장 앞에 나서서 당당히 외치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나를 먼저 찍고, 때리고, 죽여라. 나는 비폭력으로 당신들에게 맞설 테니!"

더 크게 제안하겠습니다. 비폭력을 결의한 분들이 모여서 비폭력 사수대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비폭력 사수대가 가장 앞에 스크럼을 짜고, "차라리 나를 먼저 짓밟고 죽여라" 하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비폭력주의자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간디,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이 빛났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폭력을 외쳤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는 결코 당신들을 폄하하고, 비폭력을 비웃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폭력보다 수천, 수만 배 더 큰 용기와 각오, 그리고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 비폭력입니다. 비폭력은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 경찰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 앞에 당신을 내던질 수 있어야, 비로소 비폭력은 빛을 내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비폭력을 요구하기 전에, 당신 자신을 내던지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비폭력은 그저 낭만에 가득찬 말잔치일 뿐입니다. 자신이 가장 앞에서 온 몸으로 희생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맞고 깨져도 비폭력'이라고 타이르는 것은 비겁합니다. 당신들 자신이 가장 앞에서 비폭력을 실천하십시오. 저는 기꺼이 당신들의 용기에 박수를 쳐 드리고 호응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저를 희생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비폭력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폭력이 싫어서 촛불시위에 안 나간다는 분들, 거리로 나가서 비폭력을 실천하십시오. "폭력이 싫어서 촛불시위에 안 나간다"는 말은 그저 핑계일 뿐입니다. 비폭력은 방구석에 앉아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싸움터의 가장 앞에서 당신을 던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겁니다. 간디나 마틴 루터 킹 타령하기 전에 그들이 방구석에서 비폭력을 외쳤는지, 싸움의 현장에서 솔선수범해서 자신을 내던졌는지, 그 점을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싸움은 낭만이 아닙니다. 폭력도 비폭력도 낭만이 아닙니다. 살벌하고 무서운 현실입니다. 낭만으로 현실을 타이르려고 하신다면 그만 두십시오. 그건 당신의 우아한 허영심을 채우려는 구실일 뿐입니다. 낭만을 버리고 현실로 달려가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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