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거꾸로 태극기' 사건을 두고 미니홈피에서 '태극기 거꾸로 달면...MB 됩니다! 실수하지 마세요'라는 글을 썼던 왕기춘 선수가 사과글을 올렸군요. '공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했는데 과연 왕기춘 선수를 공인으로 볼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공무원에 이어서 국가대표도 영혼이 없어야 하는 건지 참 궁금한 일입니다. 구본홍 사장처럼 낙하산으로 태극 마크 단 것도 아니고 자기 노력으로 뽑힌 국가대표인데 국가와 정부에 무조건 충성만 하고 겨우 자기 미니홈피에조차도 잘못된 걸 잘못된다는 바른 말 하나 못하는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기사화했던 조선일보는 상당히 무덤덤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의 글을 미니홈피에 올렸을 때와 사과글을 올렸을 때 모두 스트레이트 기사에 가까운 논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아주 살판났다는 듯이 칼럼에 사설까지 이빨을 세우고 덤벼들었을 조선일보인데, 생각 밖으로 아직까지는 참으로 얌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조선일보로서는 '국가대표가 대통령을 조롱하다니' 같은 사설이라도 써서 왕기춘 선수를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참으로 통탄할 노릇일 것입니다. 왕기춘 선수가 대통령을 거론한 이유가 태극기를 거꾸로 들었기 때문이고, 왕기춘 선수 욕을 하려면 '거꾸로 태극기' 사건을 얘기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기를 거꾸로 들고 좋다고 흔들어 댄 망신스러운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왕기춘 선수만 욕했다가는 아무리 조선일보가 양심불량이어도 그렇지 해도 너무 한다는 욕만 들어 먹을 게 뻔하겠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 때 뒤에 태극기 거꾸로 걸려 있는 걸 보고 자질이나 사상 문제까지 들먹였던 조선일보다보니, 아예 거꾸로 태극기를 들고 흔들어댔던 이명박 대통령은 쏙 빼놓고 왕기춘 선수만 욕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번 '왕기춘 미니홈피' 사건에 대한 기사만 봐도 거꾸로 태극기 사건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무심코 흔든 것'이라는 변명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는 판이니 왕기춘 선수만 욕하기는 참 낯간지러운 일이죠. 그리고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도 우루루 몰려들어서 왕기춘 선수 욕해 줄 열렬한 조중동 신도들도 있으니 굳이 자폭할 것까지는 없었을 것이고요.

하지만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란 말처럼 참으면 병 됩니다. 조선일보에서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 끓어 오르는 왕기춘 선수에 대한 욕을 하고 싶으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노 전 대통령한테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국기 문란 행위에 대해서도 준엄한 비판을 하면서 대통령 자질에 문제를 제기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 실컷 왕기춘 선수 욕을 해 주면 되는 겁니다. 태극기의 의미가 노무현 시절과 이명박 시절이 제각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강박관념에 빠지지 마시고 '명박님의 태극기는 거꾸로 태극기'라고 외친 다음에 실컷 왕기춘 선수 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건강의 지름길이요, 화병을 막는 비결입니다.
Posted by MP4/13

BLOG main image
Drive with your sense. by MP4/13
Add to Technorati Favorite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47)
광속질주 (253)
취생몽사 (160)
주지육림 (3)
독서삼매 (10)
음담패설 (28)
전광석화 (145)
우매상자 (66)
포장후면 (20)
악마사전 (6)
팔도유람 (20)
혹세무민 (506)
일상포착 (30)
Total : 3,711,896
Today : 253 Yesterday : 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