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을지 프리덤 가디언 연습'(참 영어 후렌들뤼한 이름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여성부'처럼 왜 이렇게 덕지덕지 붙여서 이름 길게 늘리는 걸 좋아하시는지 원...) 첫날 을지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쪽 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시켜 국력이 모아지는 것을 방해하려는 (북의) 시도는 계속될 것인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도 강구되어야 한다"

그동안 잇따른 헛발질로 국민들의 분노를 사서 취임 몇 달만에 지지율을 반에 반토막으로 내 놓고서, 자기 반성은 커녕 방송 탓, 인터넷 탓, 괴담 탓만 늘어 놓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드디어 전가의 보도인 '북한'을 꺼내들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북한에 대한 '레드 컴플렉스'는 강하게 남아 있고, 북한 카드를 꺼내들면 수구 보수 세력들의 결집도 노릴 수 있습니다. 물론 공안정국으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탄압하는 데에도 북한 만큼 좋은 구실이 없습니다. 어차피 남북관계는 이미 냉각될 대로 냉각되고 회복될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 마당입니다.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북미관계와 북일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써먹고 싶어도 써먹기 힘든 상황이 되기 전에 빨리 북한 카드를 뽑아 먹어서 주도권을 틀어쥐려는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충실한 정권의 파수꾼들을 통해 실천으로 옮겨졌습니다. 대통령이 인터넷의 신뢰성을 거론하자 국가기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털과 네티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이념분열 책동'을 언급하고 이에 대해서 '대응책'을 주문한 만큼 이 역시도 실천으로 옮겨질 확률이 무척 높습니다. 이미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이에 화답하여 "북한은 남측이 대북 강경정책을 펼칠 때 도발함으로써 정부를 곤경에 빠트리고 남남갈등을 부추길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대응책'이 실천에 옮겨진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결국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사회분열과 혼란을 획책하는' 간첩단 사건일 것입니다. 독재정권에서 심심하면 한 건씩 터뜨리면서 서슬푸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간첩단 사건의 망령을 이명박 정권이 다시 불러낼 분위기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찾아내지 못한 촛불 배후 세력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암약하는 어떻게 생겨 먹은 지도 모를 전설 속의 북한 공작원을 지목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장로답게 어설픈 예수 그리스도 흉내를 내려는 듯, 죽어서 땅에 묻힌 존재들울 속속 부활시켜서 불러 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간첩단 사건을 만들자면 떡밥이 꽤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진보 진영 안에 '주사파'로 대표되는 북한 추종 세력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 사태를 겪고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온 결정적인 두 가지 축이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였습니다. 일심회 사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심지어는 당원 명단을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주는 일까지 벌어진 바 있으니 이명박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이들 세력을 묶은 다음 중국이나 일본 같은 데에다 가상으로 북한 공작원 하나 만들어 놓고 간첩단 몇 세트 만들어 내기는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는 게 진짜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권과 종북주의 세력들은 오랜 세월 공생관계를 유지해 온 바 있습니다. 정권은 북한 추종 세력들을 묶은 간첩단 사건을 통해서 공안정국을 부활시키고 정권 유지에 적극 활용해 왔고, 종북주의 세력들 역시도 이런 탄압을 통해서 몇 사람만 희생양으로 넘겨 주면 자신들의 실체를 '민주 세력 탄압'이라는 너울 뒤로 감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보 진영 안에서 이들이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진보 진영은 분열로 망한다'이라는 해묵은 컴플렉스까지 겹쳐서 북한을 추종하지 않는 진보 진영들도 이들과 쉽게 결별하지 못하면서 과실은 종북주의 세력들이 독차지하고 탄압은 같이 받는 상황이 이어져 왔습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기점으로 진보 진영 안에서도 이제는 북한, 그리고 종북주의와 선을 그으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레드 컴플렉스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고 종북주의자들이 여전히 진보 진영에서 상당한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간첩단 카드를 꺼낸다면 아직은 진보 진영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의 일심회 사건과는 달리 이명박 정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본전을 최대한 뽑아 먹으려고 뻥튀기고 부풀리는 데에 열을 올릴 테니까요.

낡은 냉전 논리를 바탕으로 다시금 레드 컴플렉스와 독재의 망령을 불러내려는 낡은 세력들, 그리고철지난 주체사상과 국민들 배고픔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북한의 독재 정권을 추종하는 낡은 세력들, 너무 묵은 나머지 퀴퀴한 냄새 나는 이 두 세력들은 서 있는 자리는 다르고 서로 적대시할 지언정, 결국은 서로 생존을 위해서 쇼를 벌이는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서로 공생하면서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선량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마도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강렬하게 북한을 비판했던 '서태지 추종 세력' 미메시스 그룹이 북한 고무 찬양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었던 코미디 같은 상황이 1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다시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2008년에도 이런 낡은 가짜 '보수'와 '진보' 세력들의 희한한 모습들을 계속 봐야 하는 건지,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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