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로 연행된 여성들에게 유치장에서 브래지어를 벗을 것을 요구한 일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인권침해 주장에 대해서 규칙을 주장하는 경찰의 반박이 맞서고 있습니다만 경찰에서도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서 주장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한 번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48시간 이상 유치, 혼자만 있을 때'와 같은 기준까지 잡아놓고서는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에게도 브래지어를 벗도록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긴 자기들이 했던 말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미안함이나 염치도 못 느끼는 정부이니...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몇몇 논란이 있었는데, 의사인 한정호 씨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씀하셨고 여기에 대한 반박도 있습니다.


물론 경찰의 주장도 아주 무시할 얘기는 아닙니다. 수감 또는 유치시설에서는 끈과 같이 자살에 이용될 수 있는 물품들은 최대한 반입을 시키지 않는 게 보통이고 브래지어도 그런 '끈'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브래지어를 '위험 물품'으로 분류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어떤 태도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논란의 이유가 된 규칙을 보면 반드시 브래지어를 따로 보관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위험 물품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경찰이 판단해서 자살 위험이 있는 유치인에게는 브래지어를 풀도록 요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경찰청 측은 "피의자 유치및 호송규칙에 '혁대, 넥타이,금속물, 기타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은 유치할 수 있게 돼 있고, 자체 업무편람에도 자살 자해위험물에 브래지어가 들어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치할 수 있다'이지 '유치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누리없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규칙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경찰이 바보가 아닌 이상은 촛불시위로 잡혀온 사람들이 자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생각쯤은 했을 겁니다. 한정호 씨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고 착각하시는 듯한데 그게 아니라 경찰의 판단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저도 대학생 시절에 유치장에 간 경험이 있습니다만 며칠 있으면서 여성들도 유치장에 들어오고 했지만 브래지어까지 벗으라는 요구를 하는 건 못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 경우에는 별로 적용하지 않던 규칙을 들고 나와서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일으킬 브래지어 탈의 요구를 하는 것은 '보복'이란 비난을 받아도 싼 일입니다. 예전에는 경범죄에 '여성은 지붕이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아마 경찰도 이런 조항이 있었는 줄도 잘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을 가정해서, 이 법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을 당시에 시위 현장에서 담배를 피던 여성을 이 조항을 내세워 경범죄로 잡아간다면 '법질서 확립'이 되는 걸까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는 걸까요?

또한 한정호 씨는 정신병동의 예를 들면서 브래지어 탈의에 대한 경찰의 주장을 정당화하셨습니다만 그건 너무 어처구니 없는 비교입니다. 정신병자들은 심지어 자신의 정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정신을 통제할 수 없다면 육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과연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조차도 없는 정신병자의 자살을 촛불시위를 하다 잡혀온 여성들에게 갖다 붙이는 게 옳을까요?

더 문제는 경찰의 태도입니다. 이번 일을 겪은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경찰의 고압적인 자세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브래지어 같은 것으로 유치장에서 목을 매지는 않습니다. 극소수의 경우지요.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마치 자기를 자살이라도 할 사람처럼 브래지어까지 풀라는 이런 요구가 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브래지어를 풀고 하루 종일 남자 경찰관들이 보는 데서 있어야 한다는 건 여성에게는 충분히 수치스러울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럴 때 경찰이 그 이유를 설명을 하고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하는가, 아니면 '규칙인데 뭔 말이 많냐'는 식으로 고압적인 태도로 나오는가에 따라서 당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감정은 천지차이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인격 존중'이라는 게 있었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브래지어를 벗은 여성에 대한 배려 같은 건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던 것도 문제입니다. 얇은 흰 면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는 여성에게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요구했다면, 당연히 몸을 가릴 수 있는 옷을 제공하거나 브래지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게 올바른 태도입니다. 규칙만을 강요하면서 그 규칙을 따름으로써 받게 되는 피해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이건 '인권침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규칙대로 한다고 인권침해가 아닌 건 아닙니다. 규칙이 인권을 침해한다면 그 점을 보완할 방안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규칙을 지켰다는 변명만으로는 인권침해 논란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 규칙이 존재하고, 경찰은 그 규칙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규칙이 모두에게 에누리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재량권이 있다면 그 재량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재량권이 있다고 자의적으로, 사람들에게 별 인정도 받기 어려운 모양새로 권리를 남용한다면 재량권 남용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쌉니다. 재량권이란 오히려 신중히 판단해서 규칙 적용을 최소화하라는 뜻도 담겨 있는 겁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면 그 규칙 때문에 보게 될 피해에 대한 배려 역시도 있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접근이 제한된 공간이고 자신들이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서 규칙만을 내세우면서 고압적인 자세와 상대에 대한 배려를 무시한다면 그건 '행정편의주의'이고 '인권침해'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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