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이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요? 민주주의의 원칙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삼권분립에서 사법부의 정점에 있는 기관이 대법원입니다. 물론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이 하나가 더 있지만 헌법재판소장을 사법부의 수장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3심제의 정점에 있는 기관이고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기관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거의 법률에 맞먹을 정도로 막강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법률이란 것이 특정한 상황 모두에 대한 답안을 전부 다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법적 다툼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 '대법원 판례'는 법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고 하급심에서도 대법원 판례를 거스르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아무튼 이렇게 막강한 자리다 보니, 누가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되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이슈가 되기 마련입니다. 대법관을 임명하려면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해서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한마디로 3부를 다 거치게 되는 겁니다. 대법관이 갖는 막강한 권위 만큼이나 대법관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도덕성, 준법정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새 대법관 후보로 국회 동의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인물 중에서 양창수 후보자가 '위장전입' 논란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살던 양 후보자가 제주도로 주소를 옮긴 다음에 아버지의 농지를 증여 받았습니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이명박 정부의 비서진이나 장관 후보자들처럼 당시 법에서는 직접 경작자가 아니면 농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위장전입으로 농지를 물려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양창수 후보도 시인하고 있습니다.
"해당 농지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물려받은 땅"이라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주소를 옮겨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주소를 잠시 본적지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투기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해당 농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출처 : 양창수 대법관 후보 `위장전입' 논란
결과적으로 '해당 농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면서 법을 어겼다는 사실 자체는 시인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어서 투기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한 건 사실이 아니다'란 말은 도대체 어떤 논리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만 어쨌거나 분명히 직접 경작자도 아니면서 농지를 소유한 것은 불법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말은 그 뒤에 나옵니다.
양 후보자는 "저의 불찰로 반성하겠다"면서도 "20여년 전의 일로 도덕성 논란까지 불거지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법을 다루는 최고 권위를 가지겠다고 하는 판입니다. 20년 전에 불법을 저질렀으면 도덕성 논란을 안 받아도 된다는 그 해괴한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대법관은 그야말로 '법' 그 자체라고 봐도 좋을 존재입니다. 과연 20년 전이든 200년 전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탈법을 저지르고 법의 맹점을 이용해 먹고도 '20년 전 일인데 뭐 어떠냐'는 사람이 이 나라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게 '사법정의'에 부합하는 일일까요?
적어도 자신이 불법을 저질렀음을 시인한다면 대법관 후보에서 알아서 사퇴하는 게 옳은 일입니다. 안 그래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에서 '20년 전에 불법 저지른 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대법관 자리를 준다면 사법부는 또 한번 웃음거리가 될 것이고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는 더더욱 떨어질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대법관 자리를 주면서 대통령이 '법질서 확립'을 외친다면 이건 뭐 코미디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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