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습니다. SBS <긴급출동 SOS 24>에 몸담고 있던 보조작가(흔히 '막내작가'라고 하죠)가 방송국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었지요. 하필 그날 저녁이 예능작가들의 세미나 모임이 있었던 날이라서 분위기가 좀 뒤숭숭했습니다. 물론 그날 모임에서 그 사건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한마디씩 있었습니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안타까움을 "아니 죽긴 왜 죽어, 그렇게 힘들었으면 차라리 그만 두지..."라는 식으로 괜스레 돌려서 토로한 사람도 있었지요. 다들 표현 방법은 달랐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같은 예능 프로그램 작가인데, 그런 변고가 생긴 것에 대해서 누군들 속 상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그냥 '작가'란 말로 뭉뚱그리긴 하지만 막내작가는 사실 작가라 하기도 뭐한 구석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대본은 한 줄도 못 쓰고 보조업무만 해야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물론 흔한 말로 소림사에서 무술 배울 때 처음부터 발차기 가르치냐, 다 처음에는 청소하고 밥 짓고 빨래하고... 이런 잡일부터 시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어쨌거나 갓 방송국에 발을 들여 놓은 막내작가들은 그야말로 변신하기 전의 신데렐라와 같은 처지라고나 할까요. 언젠가는 마법사 할머니가 아닌 자기 힘으로 커서 멋진 신데렐라가 되겠지, 하는 꿈으로 박봉과 과중한 일을 감내하는 거죠. 대부분의 예능 작가들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커 왔고, 그러다 보니 지금 막내들에 대해서도 어차피 '이 바닥'에서 크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 정도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방송작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자잘한 것들까지 다 알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니 막내작가가 하는 일들을 무의미한 잡일로만은 볼 수 없습니다.

방송작가란 세계의 고용 형태란 게 좀 독특합니다. 정규직은 당연히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니고, 연예인과 비슷한 신분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용계약서 하나 쓰지 않고 일을 하게 되고 심한 경우에 PD 마음에 안 들면 그냥 PD가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 저항할 방법 자체가 없죠. 고용 형태가 애초부터 계약서도 없이 맺어져 있으니까요. 그리고 보수 역시도 연예인처럼 방송분에 대한 회당 원고료를 받기 때문에 만약에 특집 같은 것으로 방송이 안 나가면 그만큼 돈을 못 받게 됩니다.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에 방송이 몇 주 동안 계속 죽어서 곡소리 난 예능 작가들 많죠. 그마나 좀 상위급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병행하니까 괜찮지만 안 그래도 박봉에 달랑 프로그램 하나 밖에는 할 수 없는 막내들은 올림픽 기간 같은 때에는 정말 죽어납니다. 막내가 회당 30쯤 받는다고 가정하면 평소 같으면 4주 기준으로 한 달 수입이 120이 되지만(이것도 요즘 물가나 생활비를 따져 보면 얼마 안 되죠. 그리고 이보다도 못 받는 막내들도 적지 않습니다) 올림픽 때문에 방송이 두 번 죽어버리면 60으로 추락하죠. 이쯤 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니 돌아버릴 노릇인 겁니다. 올림픽이야 4년에 한 번이라지만 추석 설날 명절 때, 연말연시 등등... 이럴 때 방송 죽으면 막내들은 타격이 크죠. 명절이면 그래도 돈 번다고 부모님한테 용돈이라도 쥐어드려야 할 텐데.

또 한 가지 문제는 지급 방식인데, 월급처럼 딱 정해진 때에 나오는 게 아니라 PD가 제작비 정산을 해야만 지급이 됩니다. 물론 부지런하고 작가를 배려하는 PD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3-4주 정도 간격으로 정산과 지급이 이루어집니다만 때때로 몇몇 게으른 분들은 5-6주씩 미루는 경우도 있지요. 저는 심지어 4개월이나 제작비 정산 안 하고 농땡이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럼 넉 달 동안 손가락 빨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나마 경력 있고 모아놓은 돈이 있으면 '언젠가 안 주겠어?' 하고 기다린다지만 막 사회에 나온 20대 초중반의 작가들이 무슨 저축해 놓은 돈이 있겠어요? 그러니 그 쥐꼬리 만한 돈조차도 제때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긴다면 정말 생계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특히나 지방에서 홀몸으로 올라와서 자취방이나 원룸에서 사는 사람들은 환장하는 거죠. 방송국 본사에서 직접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지급이 많이 밀리는 경우가 드뭅니다만 외주 프로덕션에서 지급 받는 경우는...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밖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게 한명에서 몇 명으로 이루어지는 PD와 작가 팀을 주축으로 이루어지다보니까 정말 성격 나쁘고 작가를 우습게 아는 PD들한테 걸리면 가장 만만한 막내 작가들이 특히 죽어납니다. 심지어는 드물지만 PD가 해야 할 일들을 작가한테 떠넘기거나 사적인 심부름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바로 갑-을 관계의 설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고 옛날보다는 이런 면은 많이 나아지긴 했다는데... 그래도 아직도 어리다고 막 대하는 사람들이 일부지만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살한 작가가 어째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결국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과중한 업무를 비롯해서 이런 저런 문제가 겹쳐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직장인들 인간성 더러운 상사 없겠으며, 그런 상사들한테 험한 꼴 보는 부하 직원이 없겠습니까. 다만 보통 직장 상사에게는 당장 부하직원을 해고시킬 권한이 없다는 차이랄까요. 물론 PD가 그 자리에서 당장 '너 그만 둬' 할 권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권한을 남용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권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가 되죠.

물론 그렇다고 당장에 작가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도 없고, 또 작가의 특성상 그게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력이 좀 쌓이면 오히려 여러 방송국의 여러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게 더 좋은 수입과 안정성을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막내작가들이 현실적으로 많은 일과 그에 비해서 적은 보수가 불가피하다면 앞에서 말한 대로 한 회 불방이 심각한 타격이 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안정된 보수 환경이라도 제공하는 게 좋을 거라고 봅니다. 앞에서도 회당 원고료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때 정산과 지급이 안 돼서 휴대폰 요금이나 방세 밀려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던 막내 작가들 꽤 많을 겁니다. 사실 수입이 적으면 수입 자체도 문제지만 그 수입이 제 때 안 들어오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막내급 1-2명은 방송사에서 계약직 형태로라도 방송 여부에 상관 없이 정액 급여를 보장해 주는 게 한 가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일부 방송국에서는 라디오 막내 작가에 대해서 그런 형태의 고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매달 정해진 수입이라도 들어오게 될 것이고 지급 주기 역시도 매달 정해진 날짜로 고정되기 때문에 적은 수입이라도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들의 단체인 작가협회에서도 사실 막내작가들을 비롯한 하위직들은 좀 사각지대입니다. 일단 작가협회 가입이 일정한 경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막내급들은 가입 자체가 안 되고, 작가협회에서도 아직은 회원이 아닌 하위급 작가들의 권익에 대해서는 소홀한 게 사실입니다. 물론 막내급들은 워낙에 유동성이 많기 때문에 협회에서 경력이 없는 작가들까지 다 회원으로 챙기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만, 정회원급 경력이 아니더라도 1-2년 정도의 경력을 갖추면 준회원이나 예비회원으로라도 받아주는 제도를 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협회 안에 있는 분야별 조직에서는 막내급들까지 다 챙겨주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좀더 힘을 가지고 있는 작가협회 전체 차원에서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수입의 안정성 문제에 대해서도 작가협회 차원에서 방송사와 협상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겠죠.

뭐 어찌 됐건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독한 결정을 마냥 정당화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이번 일은 어쩌면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막내작가들의 경제적인 불안과(그렇다고 해서 SBS가 돈 제때 안 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을 포함한 보편적인 얘기이죠 수입이 무척 박한 건 사실이니) 근무 여건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는 계기는 된 것 같습니다. 방송사도, 작가들도 다시는 갓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어린 청춘이 사회의 무게에 짓눌려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때일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로 때우기에는 세상살이가 정말 힘드니까요.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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