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련 사건을 두고 국가보안법 문제가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블로고스피어에서도 역시 여러 가지 논란들이 있는데,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법은 없다는 주장도 있고, 이 법이 위헌인 데다가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는 다른 수단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 :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수 있는 法이란 없다
관련 포스트 : 맞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 다른 궁금증 하나를 내놓고 싶습니다. 왜 국가를 '보안'해야 하나요?

국가보안법 사수를 목놓아 외치는 사람들이 삼일절이나 광복절(그네들은 건국절이라고도 하죠)을 비롯한 자주 하는 짓이 있습니다.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까지 들고 설치고 나오는 짓입니다. 대한민국이 독립국가 지위를 찾은 날에 남의 나라 국기를 들고 흔들어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을 해 봅시다. 만약에 미국이 우리나라를 52번째 주로 병합하는 한미합방을 한다면 그 분들은 목숨 걸고 미국과 맞서서 독립 투쟁을 하실 텝니까? 그들은 아마도 대한민국이 미국의 52번째 주가 된다면 성조기를 몸에 감고 알몸축제라도 할 분들이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미국 만세를 외치면서 성조기 휘날리는 분들이 왜 그렇게 국가를 '보안'하려고 난리일까요? 생각해 보면 엄청 뜬금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광복절에 성조기 흔드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보안하고자 하는 것이 국가일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와 그 속에서 보장받는 기득권일까요? 만약 초강대국 미국이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흔들겠습니까? EU 깃발? 오성홍기? 아니면 욱일승천기? 사실 국가보안법을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보안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념과 기득권을 보안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곧 국가이고, 자신들의 이념이 국가의 유일 이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국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원불멸하게 지켜 주고 반대 세력을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억압하기 위한 보디가드입니다. 그렇게 기득권을 위해 봉사하고 다수를 억압하는 국가가 정녕 '보안'할 가치가 있을까요? 사실 국가란 그 존재 자체를 썩 좋게 볼 수만 없는 이유는 국가가 권력과 기득권을 바탕으로 한 다수에 대한 억압을 그 근본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노자 씨의 말씀처럼 나쁘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인 거죠. 근본은 나쁜데, 그래도 당장 없앨 수 없으니 일단은 그나마 '덜 나쁘게'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애국심을 위해서 케네디의 말을 인용하곤 합니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걸 뭐 아주 감동적인 명문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한마디로 전형적인 권력자용 멘트일 뿐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몸을 바쳤지만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케네디 말씀처럼 해서 그들에게는 무엇이 남았던가요? 친일파들을 잘 먹고 잘 살고 그들은 어렵게 삽니다. 물론 광복절이나 삼일절 쯤되면 올림픽 때 핸드볼 선수 찬양하듯이 찬양 멘트 쏟아지고 독립 투사들을 제대로 대접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는 높습니다. 목소리만 높을 뿐이죠.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국가와 나는 주고 받는 관계여야지, '네가 국가를 위해서 먼저 희생해라, 그 다음에 국가가 너한테 뭘 해 줄지는 복불복이니라' 이건 권력자들이 백성들을 억압하고 단물 빼먹기 위한 수작에 불과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케네디 같은 저런 몰염치한 애국 멘트 대신에 '내가 국민을 위해서 뭘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올림픽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양궁선수도 그렇고, 중국의 탁구선수도 그렇고, 자신이 조국에서는 국가대표로 나설 수 없을 때 애초부터 작정했든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든 다른 조국을 선택해서 국가대표로 세계무대에 나서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국가란 존재가 자신의 삶에 장애물이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조국을 위해서 희생할 것을 요구해야 할까요?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 다른 조국으로 옮겨 간 그 선택을 비난해야 할까요? 과연 국가란 나에게 무엇일까요? 국가보안을 떠들기 전에 과연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지, 국가의 이익과 내 이익이 충돌할 때 내 이익을 위해서 심지어는 국가를 옮기는 것을 과연 '애국'이란 이름으로 비난해야 할 지, 만약 '애국'을 위해서 내 이익을 희생했을 때 도대체 내 삶에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사회나 도덕 시간에 배운 그런 애국주의 말고 국가와 나의 관계가 정녕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초국적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적을 버리고 자유롭게 국가와 국가 사이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생산비 올라가면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미련없이 중국이나 인건비 싼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옮깁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애국심을 버린 '초국적인간'이 될 권리가 없는 걸까요? 기업이 중국으로 가면 노사관계니 과다규제니 하면서 국가 탓을 하지만 개인이 국적을 옮기면 꼭 '애국심' 얘기 나옵니다. 왜 기업은 괜찮고 개인은 욕을 먹어야 할까요?

물론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그 기득권을 안전하게 지키고 반대 세력들을 폭력으로 억압해 줄 이 국가 체제가 대단히 마음에 들고 이 체제를 대단히 보안하고 싶을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국가보안법 사수를 외치는 그 수십년 전 논리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한편에는 이미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전세계에 걸쳐서 많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이제는 국가니 국적이란 개념들이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과 충돌할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를 옮기는 일들이 더 많이, 더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을 들고 나와서 자신들과 다른 사상과 이념을 폭력과 억압으로 밟겠다는 사람들의 국가관은, 결국 같은 이념과 같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친목 동호회일까요? 국가보안법 사수를 외치는 사람들은 북한이 좋으면 북으로 가라고 그러죠. 마찬가지로 미국이 좋아서 그렇게 광복절에 성조기 흔들고 싶으면 서울 말고 미국 워싱턴이든 뉴욕이든 가서 원없이 흔들면 됩니다. 북한이 좋은 종북주의자들은 북한 가서 지상낙원에서 UN 식량 배급 받아 먹으면서 주린 배 움켜 쥐고, 미국이 좋은 숭미주의자들은 미국으로 가서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박박 기면 됩니다. 그럼 이 나라는 좀 더 열린 생각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만.

요즘 '이민 가고 싶다'는 말 하는 사람들 꽤 많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도 늘어 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외국인들이 점점 우리나라에 정착해서 아이도 낳고 섞여 살아가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단일민족도, 국가도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수 있는 법이란 없을지 모르지만, 국가를 다른 국가로 대체할 수는 있습니다. 그게 글로벌 시대의 센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솔직히 고백하세요. '보안'하고 싶은 건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네들의 '나와바리'라고 말이죠. 하여간에, 이 글에서 얘기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저 역시 아직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말씀은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국가보안법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이제는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도 필요한 만큼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던 그 때와 지금, '국가'란 존재는 많이 변한 것만큼은 틀림 없습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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